'아, 그것은, 수리성명학이 압도적 주류가 아니던가요?
관련 글들을 봐도 '작명가의 90% 이상이 수리성명학자'
운운하는 그런 유의 글들이 아주 많던데요?
아, 그렇군요, 그래요.
자, 그런데 그게 정말로 그럴까요?
정말로 작명가의 90% 이상이 수리작명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혀, 전혀 아닙니다.
(2) 성명학사에 관한 바른 지식
1) 최초의 성명학 등
대한민국 최초의 성명학은 언령 사상에 기초한 '의미성명학'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주로 조선시대 때 간헐적으로 나타난
주역(유사) 성명학입니다. 이 두 종류의 성명학은 지금 현재는
다양한 성명학설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2) 수리성명학 도래와 박멸 노력
1990년대 이후
이름 형식이 '운명의 대부분을 결정한다'라고 하는 '특정절대론'들이
요란한 광고와 함께 등장했습니다. (성명학 전성시대의 시작)
그런데, 이러한 '특정절대론'들은 '수리성명학'이 아무래도
걸림돌로 작용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대동단결, 이의 완전 박멸을 위해 결사적으로, 피 터지게
폭격을 가했습니다.
그중에서 하나만 예시해 보겠습니다.
① 수리성명학은 창씨개명 때(1940년) 요란한 광고 선전과 함께
도래해서 오늘날 까지도 주욱 주류성명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② 이 성명학은 한국을 망하게 할 목적으로 일본인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수리성명학은 곧 암적 존재이자 야바위 짓거리다.
더 나아가 이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민족반역행위와 다르지 않다.
→ 자, 맞는 얘기일까요?
아닙니다. 맞는 얘기가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수리성명학은, 1930년대에 일본에서 처음 도래했는데
그 당시에는 그 도래 사실조차도 잘 모를 정도로 유명무실
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창씨개명(1940) 때는
예닐곱 번 정도의 자그마한 광고가 뜨기도 했으나, 그러나
마지막 광고를 끝으로 그 활동을 완전히 접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장사가 너무 심하게 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 그리고 1940년대에는 왜놈들의 등쌀이 더더욱
우심해져서 우리의 생활상은 참상 그 자체였는데 이런 환경 속에서
'수리성명학'이 뭔 말라비틀어진 개뼈다귀란 말입니까?!